CC->UC 편입 후 생존신고 오랜만이라 로그인하는데 참 애를 먹었다. 살다보니 이런 글은 언제 썼었지 싶다.그냥 우연히 생각나서 왔다. CC편입이 한참 전에 끝나고 현재는 UCI CS 막학기를 다니고 있다. 휴학없이 6년동안 쭉 대학생활 하면서 180학점이 졸업인데 235학점까지거의 모든 상위 전공 카테고리를 꾸역꾸역들으면서내가 정말 어떤 일을 하면 잘할지, 잘하면서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바로 그걸 해야겠다 했는데찾아서 다행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 해체하고 부숴먹고 중고 부품 몰래 사서 조립하던 그게 곧 나를 만들었나보다.(뚜따도 하고, 수냉도 달다가 터트려보고 ㅋㅋㅋ) 그래서 돌고 돌아 아키텍처로 왔다 시각화(제가 보는건 좋아하는데요, 만드는건 못해요),게임(하는건 좋아하는데요.. 만드는건.. 아니더라구요?),데이터베이스(그.. [ep.8]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다 때는 2020년 3월 초. 당시 학교는 봄학기 4주 차 정도가 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스에서는 중국 바이러스 확산이 메인이었으며 공포감으로 주가 지수가 박살 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동양인이던 친구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고 다른 애들은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길거리를 걸으면 마스크 쓰던 동양인들에게 인종차별적 말을 하곤 했으니 말이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랬나.. 아무튼 LA에서 길을 걸으면 들리던 말이었다. 물론 몇 달 뒤 그들이 싫어하던 마스크는 없어서 못 샀다.... 봄학기가 5주 차쯤 됐을 때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이번주는 수업이 취소되며 다음 주부터 한 달 동안 온라인으로 전환된다는 것. 최대한 외출을 삼가며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를 피할 것. 모.. 미국에서 신용 카드 만들기: 신용도가 없어요. 없었어요..? 아뇨 없어요. 그냥. 한국의 신용 점수와 비슷하게 미국에도 Credit score라는 게 있다. 어느 나라든 의미와 목적은 비슷하기에 등급이 높을수록 대출 금리가 낮고, 대출 한도가 높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쭉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왔기에 이곳에서 나의 신용도는 없었다. 그때 처음 미국 입국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18살 고졸이 그때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 당시 2019년, 생일 안 지난 미국나이 낭랑 18세. 사실 한국 나이로는 20살) 한국에서도 체크카드와 티머니밖에 안 써봤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현금으로 들고 온 $2,000를 은행에 넣기 위해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가서 체킹 어카운트(통장)를 만들었다. (이하 'BOA'라고 하자) 그 당시 LA의 Wilshire / Normandi.. [ep.7] 코로나를 마주하다 with 돈 막 뿌리는 미국 2020년 1월. 한국에 갈 때 나는 중국을 경유해서 갔기 때문에 코로나의 심각성을 먼저 알 수 있었다. 처음 중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 살벌했던 중국 공안의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땐 이유도 잘 몰랐기에 그냥 무서웠는데 한국에 있는 한 달 동안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2월 초, 미국에 들어갈 때가 되니 전 세계 뉴스 1면을 자리 잡고 있었다. 일하고 있던 카페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자세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부에서 식당/카페 등 내부 식사를 금지시켰다. 거리두기와 팬데믹의 시작이었다. 손님이 거의 오지 않고, 주 수입원이었던 팁도 거의 사라지면서 슬슬 걱정이 생길 때쯤 정부에서 코로나 EDD라는 것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 이것이 현재 경기가 박살난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 코로나로 .. [산타바바라] 미국에서 첫 여행 때는 일식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하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 2019년 4월이었다. 미국에 온 지 2달이나 지났지만 나는 미국이란 것도 느끼지 못하고 일만 하고 있었다. 살고 있는 곳도, 일하고 있는 곳도 코리아타운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일하면서 매번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쓰는 영어 / 많은 한국인 손님과 주변의 한글 간판은 이곳이 이태원인지 미국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게 만들었다. 옛날에 형과 누나가 '산타바바라라는 도시가 참 괜찮았었다'는 소리가 생각나서 생일이 되기 일주일 전 마침 스케줄도 비었기에 나는 기차를 타고 산타바바라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유니온 역에서 Artrak을 타고 산타바바라 역까지 가는 기차였다. 처음 유니온 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서울역과는.. [ep.6] 미국 대학 첫 학기 ; 근데 이제 3학점만 곁들인 카페에서 풀타임, 고깃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알바를 하다 보니 벌써 대학교 첫 학기가 코앞으로 찾아왔다. 저번 에피소드에 말했다시피 영어 기초 작문 수업만 등록했기 때문에 딱히 학교에 대한 신경을 안 쓰고 돈 모으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때 카페에서 알바를 하면서 커피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껴 사장님께 부탁해서 마감을 하고 혼자 남아 라떼아트 연습을 하곤 했다. 일하면서 마실 수 있는 음료 2잔도 늘 라떼아트 연습용이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게 보여서 기분이 좋았고 허접한 라떼를 손님에게 내드리는 게 양심에 찔리기도 했으며 바리스타로 일하는데 최소한의 능력은 발휘해야 한다는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우유도 연습용으로 따로 1갤런짜리를 사 와서 커피 찌꺼기를 물에 살짝 타서 라떼연습을 .. [ep.5] 처음 마주한 현실 학교의 가을학기 등록일이 다가왔고 온라인으로 수업들을 신청했다. 수업을 영어로 듣는다는 게 무서웠지만 온라인으로 서칭했을 때 다들 컬리지는 수업이 어렵지 않다고 해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래서 기초 영어 작문, 기초 전공 과목, 그리고 기초 미적분학을 수강 신청했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기 때문에 무리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미국인이어도 In-State와 Out-State의 등록금 가격이 매우매우 달랐던 것이다. In-State였던 누나와 형은 한 학기에 600불이면 괜찮았지만Out-State였던 나는 거의 5000불 정도 했었다. 7~8배 차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 유학생들 정말 존경스럽다 ) 내가 out-state였던 이유는 미국에서 산지 1년이 안되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민이 아니.. [ep.4] 서버로 일을 시작하다 사장님께 서버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을 한 후 한동안 서버들이 손님에게 주문을 받을 때 옆에 같이 서서 주문을 메모지에 적고 그 뒤에 서버가 POS에 주문을 넣는걸 내 메모지와 비교하면서 내가 잘 들었는지, 메뉴를 잘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영어로 손님과 대화하는 것은 너무 무서웠지만 계속해서 러너로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고 내가 실수한다고 해서 설마 죽겠어 라는 생각도 있었다. 실수하면 대처를 잘 하면 되는 것이고, 실수를 반복 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처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처음 서버로 일해본다고 말하며 내 나이를 손님들에게 말하는 스몰토크는 그들이 나에게 있어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배경을 만들기도 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어린 나이는 사회생활 하면서 정말 .. [ep.3] 영어도 못하는데 미국에서 일을 한다고? 일을 시작하기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 이틀. 나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갔다. 쭉 한인타운에만 있다 보니 답답하기도 했고 그곳에선 거의 한국말만 쓰고 산 것 같았다. 그때는 지하철이나 버스 타는 게 무섭다기보단 더럽고 냄새나서 기분 나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깡으로 그렇게 돌아다녔나 싶다. 젊음의 패기랄까.. 객기에 더 가깝다 산타모니카에 가자마자 '와! 여기 정말 미국이었어?!' 라고 바로 생각이 들게 된 계기는 중학생 때 하던 GTA5의 배경을 실제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일탈이었지만 이때 그래도 많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해변가에서는 대마초냄새도 엄청 많이 났지만 그땐 '이게 미국이지' 라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노상에서 팔던 핫도그가 있었는데 당시.. [ep.2] 낭랑 18세 미국에서 일자리 구하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옷 가게에서 4 달 정도 알바해 본 경험밖에 없는 나는 어디서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국에서 알바 구할 때도 직접 매장에 찾아가서 아르바이트 구하냐고 물어보고 연락처 드린 뒤 뽑혔었기 때문에 정말 얼굴에 철판 깔고 집 앞에 있는 한인 식당에 찾아갔다. (다행히 한가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 그때 첫 질문이 " 영어는 잘 하세요? " 이었다. 그때당시 나는 영어 잘 한다는게 어떤건지 잘 몰랐고 "아.. 저 미국 온 지 일주일 됐어요" 라고했다. 실제로 나는 미국에 온 지 일주일 됐을 때 영어를 정말정말 못했다. 수제버거 시키는데 어떻게 패티를 구워줄지도 못알아 들었고 어떤 치즈를 줄지 물어보는 것도 이해 못해서 "Yes... Yes.." 만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데 누가.. [ep.1] 처음 와본 미국 LAX에 딱 도착했을 때까지도 미국에서 산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힘들었어서 미화되거나 왜곡되거나 사라진 기억일 수 있겠지만 ( 벌써 거의 4년 전 일이다 ) 지금 느끼기에 나는 정말 무덤덤하게 해야할 일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한동안 누나집에서 지내게 됐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해야하는 일들을 빠르게 했다. Cricket에서 핸드폰 개통 BOA 은행에서 체킹 어카운트 개설 학교 입학 알아보기 일자리 알아보기 나는 정말 미국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에 ( 근데 형이랑 누나가 딱히 준비할 거 없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 학교가 봄이랑 가을 학기로 나뉘는 것도 몰랐으며 1학년이 가을 학기에 시작된다는 사실도 몰랐다. 나는 3월부터 학교 다닐 줄 알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학교를 찾아보는 건 크.. [ep.0] 이 블로그는... 흔한 한국의 서울 일반고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에 와서 생존했었던 추억을 기념하는 블로그. 미국 오기 전에는 영어를 정말 정말 못했다. 애초에 영어에 대한 흥미도 없었고, 영어보다는 수학이나 물리를 제일 좋아했기에 영어 공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포기했던 것 같다. ( 수업 시간에 수업은 열심히 들었음 ) # 근데 왜 영어 내신은 항상 5등급? 초등학생 때부터 게임하는걸 너무 좋아했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컴퓨터 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름 학교에서 게임을 잘하는 편 이었기에 ( 롤 시즌 4부터 쭉 다이아, 오버워치 그랜드마스터 ) 친구들이랑 PC방도 자주 갔고 덕분에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많은 편이다. 초등학생 때는 수업만 잘 들어도 성적은 잘 나왔으니 패스. 그때도 나는 피시방, 놀이터,.. 이전 1 다음